클래식 향수 스토리

금기의 향, 시대를 관통하다: 향수 '타부(Tabu)'의 모든 것

MP0719 2025. 7. 22. 18:03

"타부는 리큐어가 질병을 치료하고 보석이 설탕에 절인 과일처럼 보였던 시대의 타는 듯한 향기입니다." - 루카 투린 (Luca Turin), 향수 비평가  

 

만약 1930년대의 불안과 1940년대의 욕망이 하나의 향으로 응축된다면, 그것은 어떤 향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은 아마도 '타부(Tabu)'일 것입니다. 1932년,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스페인에서 탄생한 이 향수는 단순한 향기를 넘어 시대의 정신(Zeitgeist)을 담은 하나의 문화적 선언이었습니다. "금기"라는 이름 자체에 도발을 품은 이 향수는 어떻게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잊히지 않는 전설이 되었을까요?

이 글은 향수 '타부'의 탄생부터 신화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창조자들의 대담한 비전, ▲향조의 화학적·감성적 혁명, ▲시대를 뒤흔든 마케팅 전략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합니다. 단순한 향수 리뷰를 넘어, 한 병의 액체가 어떻게 사회, 문화, 예술과 조응하며 스스로 역사가 되었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출처 https://chatgpt.com/c/687f54ff-adb0-8013-a68e-895e3de00355

1부: 스캔들의 탄생 - 1930년대, 격동의 유럽과 두 명의 천재

1-1. 시대의 반항아, 하비에르 세라와 '다나(Dana)'의 출범

1930년대 초 스페인은 정치적 격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931년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사회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경제적 혼란으로 들끓었고, 이는 곧 스페인 내전(1936-1939)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안과 결핍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야망 있는 사업가 **하비에르 세라(Javier Serra)**는 그 혼돈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욕망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저명한 향수 명가 **'미르우르지아(Myrurgia)'**의 임원 출신이었습니다. 미르우르지아는 1916년 바르셀로나에서 설립되어 '마하(Maja)'와 같은 히트작으로 스페인 향수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이었죠. 제공된 텍스트에 따르면, 세라는 미르우르지아 오너의 딸과의 결혼을 거절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이 일화는 그가 기존의 안정된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자신만의 비전을 실현하려는 강한 독립심과 야망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1932년, 그는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회사 **'다나(Dana)'**를 설립합니다. 대공황의 여파로 전 세계가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시기에 럭셔리 브랜드를, 그것도 '금기'라는 도발적인 컨셉의 향수를 론칭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대담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강렬한 감각적 자극과 판타지를 갈망하고 있음을 간파한 전략적 행보였습니다. 즉, '타부'는 위기 속에서 탄생한 '욕망의 구명보트'와도 같았습니다.

그의 브랜딩 전략은 처음부터 치밀했습니다.

  • 회사명 '다나(Dana)':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은 아름다움의 상징 '다나에(Danae)'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또한 바스크어로는 '성공', 아프간 문화에서는 '달콤한 각성'을 의미하는 등, 여러 문화권에서 긍정적이고 쉽게 발음되는 이름을 선택하며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로고: 스페인의 유명 예술가 **마리아노 안드레우(Mariano Andreu)**에게 의뢰한 그리스풍의 여성 두상 로고는 브랜드에 고전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다나의 제품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임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1-2. 조향의 혁명가, 장 칼레와 "창녀의 향수"

하비에르 세라의 대담한 비전을 현실로 만든 것은 당대 최고의 조향사 중 한 명이었던 **장 칼레(Jean Carles)**였습니다. 그는 향수의 수도 그라스(Grasse)의 명문 향료 회사 **'루르 베르트랑 듀퐁(Roure Bertrand Dupont, 현 Givaudan)'**의 수석 조향사였죠. 후각을 상실한 말년에도 오직 후각적 기억에만 의존해 '미스 디올(Miss Dior)'과 같은 불멸의 걸작을 탄생시킨 일화는 그의 천재성을 증명합니다.  

 

세라가 칼레에게 던진 조향 지시(brief)는 향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것으로 기록됩니다.

"Un parfum de puta." (창녀의 향수를 만들어 주시오.)  

 

이는 '정숙한 숙녀'를 위한 은은하고 절제된 향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의 관념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요구였습니다. 세라는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의 틀을 벗어던진,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관능미를 원했습니다.

장 칼레는 이 도발적인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공식을 이미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창조물은 너무나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세라는 샘플을 다른 공급업자들에게 보여주었고, "약국 냄새가 난다",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기엔 너무 아방가르드하다"는 혹평에 흔들렸습니다. 이 일화는 '타부'가 당시의 기준으로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격분한 칼레는 세라에게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지 말고 그대로 출시하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결국 약간의 수정 끝에, 향수 역사를 바꿀 이 '금지된 향'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1-3. 프로이트의 서재에서 피어난 이름, '타부'

향수의 컨셉과 향조만큼이나 파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이름, **'타부(Tabu)'**였습니다. 이 이름은 우연히 탄생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프랑스 니스(Nice)의 '프롬나드 데 장글레' 거리를 산책하던 세라는 한 서점 쇼윈도에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신간 **『토템과 금기(Totem and Taboo)』**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구상하던 향수에 완벽한 이름을 찾았음을 직감했습니다.  

 

이 일화는 단순한 에피소드를 넘어, '타부'가 향수 역사상 최초의 '정신분석학적 브랜딩' 사례임을 보여줍니다. 1930년대 유럽 지성계와 대중문화는 프로이트 열풍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무의식', '억압된 욕망', '리비도'와 같은 개념들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있었고, 프로이트의 조카인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이러한 심리학 이론을 마케팅에 접목해 'PR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의 『토템과 금기』는 인류 문명의 근원에 있는 원초적 금기(근친상간, 존속살해 등)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의식적 죄책감, 그리고 억압된 욕망을 다루는 책입니다. 세라는 '금기'라는 단어가 지닌,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자극하는 강력한 심리적 에너지를 간파했습니다. 그는 향수에 이 이름을 붙임으로써 소비자에게 단순히 '좋은 향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금기를 깨는 경험'**과 **'억압된 욕망의 해방'**이라는 짜릿한 심리적 가치를 판매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제품의 물리적 속성을 넘어 소비자의 내밀한 무의식에 직접 호소하는, 시대를 앞서간 고도의 브랜딩 전략이었습니다.  

 

2부: 전설의 해부 - 타부의 향, 무엇이 달랐나?

'타부'의 도발적인 컨셉은 그 향 자체에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장 칼레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담한 조합을 통해 후각적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2-1. 파촐리와 카네이션의 위험한 동맹: 향의 혁명

'타부'의 심장은 바로 **'파촐리/카네이션 어코드'**입니다. 이 두 노트의 조합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혁명이었습니다.  

 
  • 파촐리 (Patchouli): 장 칼레는 당시 향수의 베이스 노트로 흔히 쓰이던 샌달우드가 향을 '평평하게(flat)'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신 향수를 '폭발(explode)'시킬 수 있는 원료를 원했고, 그 해답이 바로 파촐리였습니다. 파촐리는 특유의 흙내음, 스모키함,樟脳(camphor) 같은 서늘함, 그리고 다크 초콜릿 같은 뉘앙스를 지닌 복합적인 원료입니다. 칼레는 이 파촐리를 전례 없는 양으로 사용하여 향수에 신비롭고 이국적이며, 거의 동물적인 깊이를 부여했습니다.  
     
  • 카네이션 (Carnation):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부드러운 꽃향기와 달리, 당시 향수에 사용되던 천연 카네이션 향의 핵심은 **유제놀(Eugenol)**이라는 성분이었습니다. 이 성분은 정향(Clove)에서도 발견되며, 맵고 알싸하며 파우더리한 스파이시 노트를 만들어냅니다. 이 날카로운 스파이시함이 파촐리의 어둡고 축축한 흙내음과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관능적인 긴장감이야말로 '타부'의 핵심 매력입니다.  
     

이 대담한 조합은 '억압과 분출'이라는 프로이트적 서사를 후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탑 노트의 베르가못, 오렌지 블로썸 같은 밝은 향이 사회적 규범이나 이성(초자아)을 상징한다면, 그 뒤를 뚫고 나오는 파촐리와 카네이션의 강렬한 향은 억압되었던 원초적 본능(이드)의 폭발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앰버, 벤조인, 시벳의 따뜻하고 동물적인 잔향은 금기를 넘어선 후의 관능적 해방과 만족감을 느끼게 합니다. '타부'의 향은 단순한 향기의 변화가 아니라, 한 편의 심리 드라마였던 셈입니다.

2-2. 향의 타임라인: 빈티지 vs. 현대, 그리고 IFRA의 그림자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타부'는 1932년의 그 향과 완전히 같을까요? 답은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원료 수급난 속에서도 대체재를 찾아가며 원형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 현대 향수 산업을 규제하는 **IFRA(국제향료협회)**의 등장은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타부'의 깊이와 개성을 책임졌던 두 가지 핵심 원료, **오크모스(Oakmoss)**와 **천연 시벳(Civet)**이 규제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 오크모스: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때문에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빈티지 '타부'의 깊고 풍부한 흙내음과 놀라운 지속력은 상당 부분 이 오크모스 덕분이었습니다. 현재는 알레르기 유발 성분(atranol, chloroatranol)을 제거한 특수 처리 오크모스나 합성 대체제(Evernyl)가 사용되지만, 원본의 복합적인 깊이감을 완벽히 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 시벳: 사향고양이의 분비물에서 얻는 이 원료는 동물 보호 문제로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극소량만으로도 향 전체에 관능적인 깊이와 인간의 살냄새 같은 '스킨 센트(skin scent)'를 부여하는 마법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는 **시베톤(Civetone)**과 같은 합성 애니멀릭 노트로 대체됩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현대의 '타부'는 빈티지 버전에 비해 애니멀릭한 깊이와 어두운 뉘앙스가 줄어들고, 대신 스파이시한 콜라나 루트비어 같은 달콤함이 더 부각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래 표는 빈티지와 현대 포뮬러의 주요 차이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Table 1: 향수 '타부(Tabu)'의 빈티지 vs. 현대 포뮬러 노트 비교

구분 (Category) 빈티지 포뮬러 (Vintage Formula) 현대 포뮬러 (Modern Formula) 변화의 주요 원인 (Key Reason for Change)
핵심 베이스 노트 천연 오크모스 (Natural Oakmoss), 천연 시벳 (Natural Civet) 저자극성 오크모스/합성 대체제 (Low-Atranol Oakmoss/Evernyl), 합성 시베톤 (Synthetic Civetone) IFRA의 알레르기 유발 물질 및 동물 유래 성분 사용 규제  
 
 

전체적 인상 깊고, 어둡고, 스모키하며, 동물적인 뉘앙스가 강함. 복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 더 밝고, 달콤하며(루트비어/콜라 향), 직설적인 스파이시-앰버 향. 애니멀릭 뉘앙스 약화.  
 
 

핵심 베이스 노트의 변화로 인한 깊이감과 복합성 감소.
탑 노트 스파이스, 오렌지, 코리앤더, 네롤리, 베르가못  
 
 

이탈리안 베르가못, 레몬 오일 등 시트러스 노트가 더 강조되는 경향  
 

현대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더 밝고 접근하기 쉬운 첫인상을 주기 위한 미세 조정.
하트 노트 정향(Clove), 일랑일랑, 수선화(Narcissus), 자스민, 로즈  
 

불가리안 로즈, 일랑일랑, 자스민 앱솔루트. 정향/카네이션 뉘앙스는 여전함.  
 

수선화 등 일부 천연 플로럴 앱솔루트의 수급 문제 및 비용 문제로 인한 대체 가능성.
베이스 노트 앰버, 천연 시벳, 벤조인, 샌달우드, 파촐리, 천연 오크모스, 머스크  
 

앰버, 합성 시베톤, 벤조인, 파촐리, 저자극성 오크모스, 머스크  
 

IFRA 규제로 인한 핵심 원료(시벳, 오크모스)의 대체가 가장 큰 변화 요인.

2-3. 후대의 그림자: 오피움과 유스 듀의 원형

"오피움을 이해하려면 타부를 이해해야 합니다."  

 

향수 업계에서 전해지는 이 말은 '타부'의 역사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타부'가 개척한 대담한 스파이시-오리엔탈 장르는 후대 걸작들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 에스티 로더 '유스 듀 (Youth Dew, 1953)': '타부'의 파촐리 중심 구조를 계승하여, 더욱 풍부한 발사믹 노트와 스파이스를 더해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타부'가 유럽의 도발이었다면, '유스 듀'는 미국적 풍요로움과 실용성(원래는 바스 오일로 출시)이 결합된 버전이었습니다.  
     
  • 이브 생 로랑 '오피움 (Opium, 1977)': '타부'의 정신적 후계자로 불리는 '오피움'은 '타부'의 스파이시-오리엔탈 구조를 1970년대의 화려함과 퇴폐미로 재해석했습니다. '아편'이라는 이름과 중국풍 용기 디자인 등, '타부'가 선보였던 '금기'와 '이국적 판타지' 마케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사례입니다.  
     

이 외에도 겔랑의 '샬리마(Shalimar)', 코티의 '에머로드(Emeraude)' 등과 함께 오리엔탈 향수 계열의 클래식으로 꼽히지만, '타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가격에 가장 강렬한 개성을 제공하는 '드럭스토어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3부: 시각의 유혹 - 광고 역사상 가장 긴 키스

'타부'의 신화는 후각뿐만 아니라 시각을 통해서도 완성되었습니다. 다나는 향수의 도발적인 컨셉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시켜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3-1. 캔버스 위의 도발, 크로이처 소나타

1941년 4월, 미국의 **보그(Vogue)**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 실린 '타부'의 첫 광고는 광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광고에는 프랑스 화가 **르네 프린(René Prinet)**이 1901년에 그린 그림 **<크로이처 소나타(The Kreutzer Sonata)>**가 "Tabu, the forbidden fragrance"라는 슬로건과 함께 실렸습니다. 그림은 연주에 몰입하던 바이올리니스트가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연주하던 피아니스트를 끌어안고 격렬하게 키스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광고가 천재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한 키스 장면을 넘어, 그 뒤에 숨겨진 깊은 예술사적 서사를 끌어왔다는 점입니다.

  1. 그림의 원작: 르네 프린의 그림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동명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은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이 아내와 그녀의 바이올린 파트너의 예술적 교감에서 성적 배신감을 느끼고 결국 아내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 소설의 원작: 톨스토이가 소설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입니다. 이 곡은 듣는 이를 압도하는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선율로 유명하죠.  
     

하비에르 세라는 단순히 자극적인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 톨스토이의 문학, 프린의 회화로 이어지는 '예술의 권위'를 빌려와 '타부'라는 상업 제품에 신화적 아우라를 덧씌웠습니다. 만약 새로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면 저급한 성적 소구라는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존의 예술 작품을 차용함으로써, '타부'의 광고는 단순한 외설을 넘어 '억누를 수 없는 예술적 열정', '비극적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문화적 서사를 품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는 향수를 구매함으로써 이 깊이 있는 서사의 일부가 되는 듯한 환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금기'라는 위험한 컨셉을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동경하게 만든 고도의 심리 마케팅이었습니다.

3-2. 아바나의 밤을 거쳐 뉴욕으로: 금지된 향의 상륙

'타부'가 미국 시장에 공식적으로 데뷔하기 전, 이 금지된 향은 흥미로운 경로를 통해 먼저 알려졌습니다. 바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를 통해서였습니다.  

 

1930-40년대 아바나는 미국인들에게 '이국적인 쾌락의 도시'로 통했습니다. 미국의 금주법(1920-1933) 시대부터 수많은 미국인들이 럼주와 시가, 카지노와 열정적인 음악이 넘치는 아바나에서 일상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만끽했습니다. '금기'라는 이름을 가진 향수가 바로 이 '자유로운 욕망의 섬'을 통해 미국에 처음 알려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1940년, 다나는 나치 독일의 파리 점령을 피해 본사를 뉴욕으로 이전하며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섭니다. 1941년 광고 캠페인이 시작될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직전의 긴장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타부'의 도발적인 광고는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고픈 대중에게 강력한 판타지를 제공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전례 없는 소비 붐을 맞이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경제력을 갖게 된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했지만, 그들의 욕망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타부'는 이러한 포스트-워(Post-war) 시대의 여성들에게 '순종적인 주부'라는 사회적 가면 뒤에 숨겨진 개인의 열정과 욕망을 긍정해주는 상징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3. 금지된 판타지와 젠더 정치학: 광고 이미지 재해석

'크로이처 소나타' 광고는 발표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며 '광고 역사상 가장 긴 키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이미지는 당시의 젠더 관념을 어떻게 반영하고, 또 어떻게 전복시켰을까요?  

 
  • 전통적 해석: 표면적으로 이 광고는 열정에 휩싸인 남성(바이올리니스트)이 수동적인 여성(피아니스트)을 압도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이는 여성을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는 당시 광고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 전복적 해석 (Subversive Reading): 하지만 이 이미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성은 단순히 남성에게 이끌리는 무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녀 역시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이며, 격정의 순간에도 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피아노 건반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향수 평론가 바바라 허먼은 "이 광고는 여성이 남성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 자신의 욕망과 관계를 맺고, 로맨스와 섹스에 대한 환상을 갖도록 초대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이 광고의 진짜 타겟은 남성의 시선이 아니라, 여성 소비자 자신의 내면적 욕망과 판타지였던 것입니다.  
     

1940-50년대 대부분의 광고가 여성을 수동적인 주부나 성적 대상으로 묘사했던 것을 고려하면 , '타부'의 광고는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시대를 앞서간 시도였습니다. 이는 현대 광고계의 화두인 **'펨버타이징(Femvertising, 여성의 주체성과 역량 강화를 지지하는 광고)'**의 원시적 형태, 혹은 그 사상적 맹아(萌芽)를 품고 있었다고 재평가할 수 있습니다. '타부'는 여성들에게 '남성을 유혹하라'고 말하는 대신, **'너 자신의 금지된 욕망을 탐험하라'**고 속삭였던 것입니다.  

 

결론: 당신의 살갗 위에 새겨진 역사 한 조각

'타부'는 단순한 향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공황의 불안, 전쟁의 광기, 그리고 전후 시대의 억압된 욕망이 뒤섞인 20세기의 가장 드라마틱한 시대정신이 응축된 '문화적 선언'입니다.

'타부'가 9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 시대정신의 포착: 하비에르 세라는 '금기'라는 컨셉을 통해 억압된 시대의 무의식적 욕망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 후각적 혁명: 장 칼레의 천재성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담한 향의 구조를 창조하며 오리엔탈 향수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 시각적 신화: 예술과 문학, 심리학의 서사를 엮어낸 광고는 단순한 판촉을 넘어 '타부'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타부'를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향수를 뿌리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20세기의 가장 격정적인 시대를 후각으로 체험하고, 그 안에 담긴 도발과 열정, 그리고 금기에 대한 갈망의 역사를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가장 가까운 퍼퓸 샵, 혹은 온라인 스토어에서 '타부'를 만나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손목 위에서, 90년 전의 스캔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 직접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