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파리 오뜨 꾸뛰르의 정점, 마담 그레스의 '고집'
20세기 패션계의 거장 중 한 명이자, 옷을 '조각'하는 예술가로 불렸던 마담 그레스(Madame Grès). 그녀의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과 강렬한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1959년, 마담 그레스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향수, **'까보샤르(Cabochard)'**를 세상에 내놓으며 향수 역사에도 잊을 수 없는 족적을 남깁니다. 프랑스어로 **'고집스러운' 또는 '완고한'**이라는 뜻의 'Cabochard'는 마담 그레스 자신의 불굴의 정신과 완고한 예술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향수였습니다. 이 향수는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 될 수 있었을까요?
👑 마담 그레스: 옷을 조각한 예술가의 향수 비전
마담 그레스는 본명 제르맹 에밀리 크렙스(Germain Émilie Krebs)로, 원래는 조각가가 되려 했던 예술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1930년대 초 '알릭스(Alix)'라는 이름으로 오뜨 꾸뛰르 하우스를 시작했고, 1942년에는 자신의 결혼 성에서 따온 '그레스(Grès)'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그녀는 특히 그리스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정교한 드레이핑(draping) 기법으로 유명했으며, 원단을 재단하지 않고 통째로 사용하여 몸의 선을 따라 흐르는 듯한 우아한 실루엣을 창조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예술적 완고함과 고집스러운 개성은 향수에도 투영되었습니다. 마담 그레스는 인도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향수를 구상했는데, 처음에는 수선화를 중심으로 한 부드러운 플로럴 향('슈다' Chouda)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시장의 트렌드와 그녀의 강렬한 이미지를 고려하여, 더욱 대담하고 강렬한 향수, 즉 **'까보샤르'**가 탄생하게 됩니다.

🌿 '까보샤르'의 탄생: 가죽 시프레의 새로운 기준
까보샤르의 조향은 국제적인 향료 회사 IFF 소속의 천재 조향사 **베르나르 샹(Bernard Chant)**이 맡았습니다. 마담 그레스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고 병을 활용하고자 했고, 장 페리뇽(Jean Perigny)이 약병 마개와 'G' 이니셜이 새겨진 심플한 병에 회색 벨벳 리본을 더하며 꾸뛰르 하우스의 섬세한 터치를 불어넣었습니다.
까보샤르는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가죽 시프레(Leather Chypre) 계열의 향수로 분류됩니다. 그 독특한 향기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탑 노트: 알데하이드, 세이지, 향신료, 타라곤, 아사페티다, 레몬, 갈바넘, 프루티 노트가 어우러져 신선하면서도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줍니다.
- 미들 노트: 제라늄, 오리스 뿌리, 장미, 재스민, 일랑일랑이 섬세한 플로럴 하트를 형성합니다.
- 베이스 노트: 가죽, 오크모스, 담배, 베티버, 패츌리, 샌달우드, 머스크, 앰버, 코코넛, 그리고 카스토레움(castoreum)과 같은 동물성 노트가 깊고 스모키하며 관능적인 잔향을 남깁니다.
특히 '가죽' 노트는 당시 대담한 향수로 유명했던 로베르 피게(Robert Piguet)의 **'반딧(Bandit)'**과 비교되며, 까보샤르는 반딧보다 "더 부드럽고 세련된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마담 그레스는 이 향수가 인도의 길고 비어있는 해변을 걷던 추억, 즉 "아침 공기의 날카로운 신선함, 샌달우드의 따뜻함, 꽃의 터치, 그리고 바닷바람의 편안함"을 떠올리게 한다고 묘사했습니다.
📈 성공과 도전: 까보샤르의 파란만장한 여정
까보샤르는 마담 그레스의 원래 의도였던 플로럴 향수 '슈다'와 함께 1959년 말에 출시되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레이센(Reissen)은 까보샤르가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었음을 기억하며, 몇 달 후 슈다의 판매는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까보샤르의 성공 뒤에는 로베르 피게 향수 회사에서 '반딧'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던 위탁 판매원의 열정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첫 주에만 250병, 추가로 1,000병이 요청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치 못한 성공은 10년 가까이 공급 문제를 야기했으며, 겔랑의 레이센은 당시 "매출이 매년 두 배로 늘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성공 뒤에는 그림자도 따랐습니다. 1967년, 까보샤르의 성공을 이끌었던 레이센은 샤넬의 소유주 자크 베르트하이머(Jacques Wertheimer)의 초대로 샤넬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의 부재와 함께 마담 그레스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특히 미국 유통업자였던 밀턴 스턴(Milton Stern)과의 계약 분쟁은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고, 마담 그레스는 150만 달러가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스턴은 이 돈으로 1977년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 향수를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레이센은 마담 그레스의 천재성을 존경하면서도 "때때로 불가능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하며, 그녀가 까보샤르로 큰돈을 벌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1943년 약 2만 명에 달했던 오뜨 꾸뛰르 시장의 고객 수는 1970년에는 2천 명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등 시대의 변화 또한 그레스 하우스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1981년까지 그레스는 사업을 지속할 자본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 시대를 초월한 유산: 까보샤르의 현재
까보샤르는 여러 번의 부침을 겪었지만, 그 독특한 매력 덕분에 꾸준히 사랑받으며 여러 차례 재해석되었습니다. 특히 1984년, 까보샤르 탄생 25주년을 기념하여 기존 병이 회색 벨벳 리본과 함께 무광 유리로 재해석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오크모스(oakmoss) 사용 규제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리포뮬레이션(reformulation)을 거쳤지만, 까보샤르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까보샤르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 패션계 거장의 고집스러운 정신, 혁신적인 조향사의 예술성, 그리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고 있는 불멸의 걸작입니다. 그 대담하고 우아한 가죽 시프레 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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