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 편향 (Omission Bias) : 가만히 있으면 정말 중간은 갈까? (나를 조종하는 어둠의 심리학)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진짜 이유
당신도 모르게 빠져있는 함정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이가 열이 나는데 해열제를 먹이기가 망설여져서 그냥 지켜봤더니 더 심해진 적, 투자할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손해 볼까봐' 그냥 두었다가 후회한 적, 회사에서 문제를 발견했지만 '괜히 나섰다가 미움 받을까봐' 입을 다물고 있었던 적...
이 모든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무언가를 했을 때의 위험'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보다 훨씬 크게 느끼는 우리 마음의 작동 방식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같은 결과가 나올 상황에서도 '행동해서 잘못되는 것'을 '행동하지 않아서 잘못되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워하는 우리 뇌의 특성입니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착각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들을 보면 이런 심리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
-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언뜻 보면 현명한 처세술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더 큰 손실로 이끄는 함정일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 백신 접종을 망설이는 부모의 마음
많은 부모들이 아이 백신 접종을 고민합니다. 통계적으로 백신 부작용 확률은 질병 감염 확률보다 훨씬 낮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백신을 맞혀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백신을 안 맞혀서 아이가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죠. 같은 '아이의 건강'이 걸린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우리 뇌가 '행동'과 '무행동'을 다르게 처리하는 이유
1. 손실의 고통이 이익의 기쁨보다 2배 크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금액의 손실을 이익보다 2배 더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 행동해서 10만원 잃는 것 = 고통 지수 100
- 행동하지 않아서 10만원 못 번 것 = 고통 지수 50
뇌 입장에서는 '행동해서 손해 보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거죠.
2. "내가 한 짓이니까 내 책임"이라는 생각
행동의 결과는 선명하고, 무행동의 결과는 흐릿합니다.
- 투자해서 손해 본 경우: "내가 괜히 건드렸구나" (선명한 후회)
- 투자하지 않아서 기회를 놓친 경우: "어차피 위험했을 거야" (흐릿한 합리화)
3. 반성적 사고의 함정
우리는 **'만약 그때 다르게 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행동한 경우에 더 많이 합니다.
- "그때 주식을 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쉽게 떠오르는 생각)
- "그때 주식을 샀더라면 좋았을 텐데..." (잘 떠오르지 않는 생각)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부작위 편향
직장에서: 침묵하는 조직문화
"괜히 말했다가 찍히면 어떡하지?"
회사에서 문제를 발견해도 말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말해서 생기는 위험은 선명하지만, 말하지 않아서 회사가 입는 손실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가 침묵하게 되고, 작은 문제가 큰 위기로 번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의료 현장에서: 과잉 진료와 소극적 치료
의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는 의료 원칙 때문에 적극적 치료보다 소극적 관찰을 선호하기 쉽습니다.
물론 신중함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빠른 치료가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투자에서: 손실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심리
**"팔아서 손해 보는 것"**보다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덜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어차피 종이 손실일 뿐이야", "언젠가는 오를 거야"라고 합리화하면서 더 큰 손실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법정에서는 어떻게 판단할까?
흥미롭게도 법률은 우리의 직관과 다르게 작동합니다.
세월호 참사: 부작위도 살인이 될 수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은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고 먼저 탈출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판결했습니다.
"구조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구조하지 않는 것도 살인과 같다"
개인의 심리와 달리, 법은 상황에 따라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과 동등하게 처벌합니다.
보라매병원 사건: 의료진의 딜레마
1997년 보라매병원에서 의료진이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켰고,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법원은 의료진에게 **'살인 방조죄'**를 적용했습니다.
"살려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의 부작위도 책임을 진다"
뇌과학이 밝혀낸 놀라운 사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것'은 뇌의 다른 영역에서 처리됩니다.
뇌졸중 환자 연구에서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말해야 할 단어를 말하지 못하는 실수'**와 **'말하지 말아야 할 단어를 말하는 실수'**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부작위 편향은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작위 편향에서 벗어나는 실용적 방법
1. 나의 편향을 인정하기
먼저 **"나도 이런 편향에 빠질 수 있구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편향을 인정하는 것이 극복의 첫걸음입니다.
2.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기
막연한 불안 대신 구체적인 숫자와 확률로 생각해보세요.
예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겼을 때
- 도전했을 때 실패 확률: 30%
- 도전하지 않았을 때 기회 상실: 100%
3. 10-10-10 규칙 활용하기
10분 후, 10개월 후, 10년 후 각각 어떤 선택을 후회할지 생각해보세요.
보통 단기적으로는 행동을 후회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행동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합니다.
4. 다른 사람 관점에서 조언하기
"친한 친구가 같은 상황이라면 뭐라고 조언할까?"
타인의 문제에서는 부작위 편향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조직과 사회 차원의 해결책
1. 실패에 관대한 문화 만들기
**"실패는 경험이다"**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구글, 3M 등 혁신적인 기업들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도 배움을 찾아 보상하는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2. '옵트아웃' 방식의 정책 설계
장기기증, 연금 가입 등에서 **'참여가 기본, 원치 않으면 거부'**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부작위 편향을 오히려 선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3. 명확한 책임과 권한 부여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결정할지"**를 명확하게 정하면 책임 회피를 줄일 수 있습니다.
마무리: 행동하는 용기를 가져보세요
부작위 편향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려는 뇌의 선의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더 큰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완벽한 선택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만있으면 중간도 못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딛어보세요. 그 한 걸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변화하지 않아서 뒤처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라"
당신은 오늘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